조선일보 사회면에 일사랑이 소개되었습니다. ^^ 리비아 이야기 -1-

좀 늦은 9.11 회고

9월 18th, 2006 at 08:35pm 상우아방

길거리 신문 가판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더군요.
‘9.11 5주년’이라는 굵은 활자였습니다.
중국의 어떤 신문 매체가 ‘9.11 5주년’이라는 특집으로 지면을 메우고 있더군요.

그리고 보니 그 일이 벌써 5년이 되는구나…
5년이라는 지난 시간이 짧은 순간에 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9.11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허름한 여관에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고, 전화 벨소리가 잠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지요.

전날 여관에 투숙하며 ‘담배피는 방’을 달라고 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같이 동행한 통역이 담배를 피는 사람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담배피는 방’을 선택했었지요. 그런데 방안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지독한 냄새가 구석구석에 배어있었습니다.

담배인지, 시가인지, 마리화나인지 아주 독한 냄새가 벽에서 풍겨나왔지요. 게다가 동행한 통역은 잠자기 전 담배를 연신 피워댔고…잠을 자면서 내 머리가 당했을 ‘냄새 고문’은 불문가지였습니다.

‘ 팀장님, 괜찮으세요?’

어렵게 집어든 수화기에서 한국에 있는 여직원이 걱정스럽게 물어왔습니다.
‘응, 괜찮지 뭐… 그런데 왠일이야…’
‘ TV 보셨어요?  지금 거기에서는 큰 일이 터졌다고 하던데…일단 TV를 보세요.’
‘응,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일단 창문을 열었습니다.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동행했던 통역은 아직 자고 있었고, 그의 머리 근처에 담배 꽁초가 수북히 쌓인 재떨이가 있었습니다. 

‘어휴.. 저 웬수…’

TV를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허리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쪽 빌딩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는데, 어디에서인가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나 멀쩡하던 다른 빌딩을 들이박는 장면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더군요. 이 장면을 보며 무의식중에 내뱉는 여자 사회자의 ‘Oh, My God’ 이라는 한탄도 들려나왔지만, TV는 기본적으로 할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역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펜타곤의 모습도 반복적으로 보였지요. 그 날 아침, 미국의 TV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의 발생에 넋이 나간듯이 보였습니다. 

사실 나의 샌프란시스코 출장일은 그다지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때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라는 일을 하고 있었고, 어려움에 봉착한 상황이었지요.  당시 우리는 한국의 업체와 미국 업체간의 계약 관계를 근거로 한국 학생들을 미국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가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학생들을 모집하고 미국 업체와의 일처리는 다른 한국 업체가 처리하는 구조였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도 ‘돈’에서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 한국업체에게 한국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돈과 그들의 수익분까지도 이미 지급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국업체가 돈을 다른 곳에 유용했고, 미국 업체는 한국 학생들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왔으며, 우리는 영문도 모른체 일을 당해야 했습니다.  학부모들의 비난은 우리에게 쏟아졌구요. 

길게는 일 년, 짧게는 몇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려 준비해온  한국 학생들이 9월초가 되도록 미국 어디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못듣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난감했고, 어떻게 하든 이 학생들을 미국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 업체를 직접 찾아가 면담하려 했던, 무거운 마음의 출장길이었지요.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산 어쩌고’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 그 미국 업체가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 숙소를 잡고 렌트카로 그 도시를 오가며 협상을 진행했었지요.

이틀간 이야기를 진행했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못받은 돈을 우리가 별도로 지급하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중요한 시기에 있는 학생들  이 엄청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을 위해 방안을 마련해 달라…’

‘당신 회사와 학생들이 겪고 있을 고통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그러나 이미 개학 시기가 지났다.  

방법을 찾기 어렵다…’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이 ‘9.11 ‘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이 터졌고, 나는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가 심리적 공황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 달라. 듣기로는 뉴스에 보도된 것 말고도 다른 항공기들이 추락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학생들을 미국에 들여오는 일을 추진할 수가 없다…’

 그 미국 업체의 대표였던 눈이 파란 아줌마는 애써 공포를 추스리는 눈으로 우리를 되려 설득했습니다.  다음날 부터는 금문교가 폐쇄되어 차들이 지날 수 없었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보초를 서는 것이 TV 화면에 보였지요. 그 인근 도시로 가려면 금문교를 지나야 했는데, 우리는 더 이상 그 미국 회사를 찾아갈 수 없었지요.

공항이 폐쇄됐습니다. 우리는 한국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삼일간,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 냄새나는 여관에 틀어박혀 지내야 했습니다. 공항이 다시 업무를 재개하면서,  그제서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요. 어두운 여관 방안에서 한국 상점에서 사온 컵라면을 후르륵 거리며 먹던 기억이 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오시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라는 가사의 노래로 이미지가 떠오르는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높은 언덕길을 오르는 전차와 고풍스런 건물들로 내 머리에 각인되었던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그런 샌프란시스코가 어둠이 내리면 인적이 사라지는 섬뜩한 거리로, 담배 냄새로 찌든 벽으로, 폐쇄된 금문교로, 공포에 질린 어떤 미국 아줌마의 눈으로 나에게 남아있습니다.  이런 이미지 전환의 중간 지점에 5년전의 9.11 이 있습니다. 

이 글은 국제관계/세계인에 속한 글입니다.

Leave a Comment

hidden

Some HTML allowed: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ode> <em> <i> <strike> <strong>

Trackback this post  |  Subscribe to the comments via RSS Feed


Calendar

1월 2009
« Dec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카테고리

최근에 등록된 글

최근 인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