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이야기 -1-
9월 20th, 2006 at 01:58pm 배둘레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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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땅을 처음 밟게 된것은 1982년 12월 4일이다. 그야말로 비행기도 처음 타 본놈이 김포에서, 그 것도 미국땅인 Alaska의 Anchorage를 거쳐서, 그 다음날 새벽 12월 3일 Paris에 내린 게다. 그리고 하루 그저 폼나게 Paris 관광도 그럴싸 하게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Paris에서 한 밤을 자고, 다음날인 12월 4일 리비아의 Tripoli에 도착 했다. 그저 비가 정말로 억수로 퍼붓고, 번개가 번득이는 한밤중이었다.
공항의 불은 유난히도 밝았다. 그녀석들이 그 당시에도 돈발은 있어선지, 공항에 유난히 전기를 밝혀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은 겁이나 눈이 유난히도 둥글 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공항 안내 방송은 첫인상이 중국말 아닌가 할 정도도 억양 높낮이가 크고, “크, 슈, 스” 소리가 많았었다. 그리고 서있는 경찰이나 군인의 복색이 영화에서난 보았던 첫눈에 빨갱이 나라의 복색이었었으니, 내심 긴장과 겁이 날 수밖에…. 요즘사람들 빨갱이 나라 좀체 겁내하는 사람들도 없고, 심지어 부산 바닥은 한국인지 소련인지도 모르는 판이니 … 그 땐 무지 무시무시한게 빨갱이고, 빨갱이가 잡아간다는 말이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말보다 무서웠던 때다.
Paris이야기가 나오니, 그때 참 겂없이 용감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30여명의 건설 현장의 기능사원을 인솔하는 역을 맡았었는데, 씩씩한 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도 영어께나 하는 척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었다.
그런데 아니 웬걸, 초장부터 객지에서 영어가 고생할 수 밖에 없었으니…. 자, 보통은 우리 상식에 커피를 시키면, 당근으로 설탕과 프림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래도 식당 서비스에서는 둘째가라하면 서러울 놈들이 설탕 마저 가져다 줄생각을 하지 않아, 점잖게, “갹송” 하고 불러 세워서, “슈가, 실 부쁠레” 했었다. 물론 아주 내 딴에는 단호한 자세와 음성이였다…
아니, 그런데 못 알아 먹는 놈이 당황하기 마련인데 아전인수 식으로, “뭔 말인감?” 하면 다른 녀석을 부르질 않는가? 그런데 그 놈도, “ 뭘 말하는 거야?” 하는 표정이 아니든가? 이젠 오히려, 내 쪽에 서 당황이 들어 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네번째 웨이터 ( 기분 같아서는 “시다” 또는 “조바같은 녀석이 …!” 했지만)가 나타나더니만, “뭐 주까?” 하는 식으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닌가? 이젠 막판이다 하는 자세로 손으로 설탕을 붓는 시늉까지 섞어서, “ 슈가, 슈가..!” 하니 그제서야 그 네번째놈이 겨유 알아 듣고는 “ 으응? 쑤크르?” 하면서 설탕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안닌가? 그제야 안도를 하고, 고등학교때 배운 독어에서는 “쥬커”을 연상하며 “아하 이녀석들은 ‘쑤크르’라고 하는구나하고 속으로 외워 두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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