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가 만난 사람 - 돌 위에 꽃피운 30년 전각 인생, 고암 정병례
9월 21st, 2006 at 10:06am cuty
허중희가 만난 사람 - 전각 예술가, 고암(古岩) 정병례
돌 위에 꽃피운 30년 전각 인생, 전각 애니메이션 최초로 선보여
고암 정병례 작가는 국내 전각 예술가로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는 최근, 고풍스러운 전각을 첨단 예술인 애니메이션에 결합해 ‘고암 정병례의 전각 애니메이션전’을 열었다. ‘바람을 품다’라는 타이틀의 이번 초대전은 전각과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한 이색 전시회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전각은 칼로 돌, 나무 및 금속 위에 문자를 새긴 다음, 인주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어 나타내는 인영(印影)을 감상하는 전통 예술이다. 대표적인 전각 작가인 고암 정병례 선생은 정적(靜的)인 전통예술에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보태 ‘움직이는 전각’을 선보이면서 미술계에 관심을 모았다.
“전각은 글, 그림, 조각을 합친 전통예술의 백미인데, 일반인들은 그냥 고급 도장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각은 독립적인 순수예술이에요. 돌을 파는 아날로그 작업과 한번 파낸 것을 계속 찍어내는 디지털 행위가 합해진 ‘아날로지털 예술’이라 매우 현대적이기도 하지요. 이런 성격을 대중에게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전각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자신의 전각 예술을 ‘아날로지털한 만남’이라고 칭한 작가는 지난 30년간 ‘East & West, Old & New’라는 목표 아래, 전각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전각은 글씨와 그림, 조각이 하나로 어우러진 종합 예술”
고암의 전각 작품들은 영화나 책 표지에서, 지하철과 거리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지하철역 게시판의 ‘풍경소리’, 드라마 ‘왕과 비’의 타이틀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또 전통예술에서 시작해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고 있다. 이는 중국 대만 일본 등 우리보다 전각이 훨씬 발전한 나라에서도 꿈꾸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전통에 해박해야 비로소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서 “전각은 글씨와 그림, 조각이 하나로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 그 특성을 극대화하면 더욱 참신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정병례 선생은 올해 봄, 그간 30여년의 전각 인생을 되돌아보고 아로새긴 작품 한 점을 내놓았다. 돌과 칼이 아닌, 진솔한 글과 따뜻한 문구로 완성된 이 작품의 이름은 <내가 나를 못말린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어둠을 홰쳐 밝은 누리를 여는 돌꽃피움 인생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나를 못말린다>는 정병례 선생의 예술과 인생, 전각과 함께 걸어 온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30대에 도장 파는 일 하다가, 전각 예술에 입문
현재 전각예술가로는 보기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이지만 그는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의류공장에서 일하고 도장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평범한 공원(工員)이었다.
“어려서부터 혼자 연이나 팽이를 만들고 부채에 그림 그려 넣는 걸 좋아했지만, 미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한 뒤 바로 공장에 취직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미술 전시 구경을 가면 나도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그는 도장 파는 일을 하던 30대에 ‘전각교본’을 본 뒤, 이 분야를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끝나면 서예실을 다니며 글씨와 각법(刻法)을 배우다가 37세에 전각예술가 회정 정문경 선생님을 만나 정식으로 전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만 42세 때 첫 전각전시를 했다. 45세에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서예대전에서 각각 우수상을 받은 뒤 지금까지 개인전과 단체전을 50여 회나 열었다. 전각예술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추구하는 그는, ‘정통이 아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대중을 전통예술세계로 끌고 가려면 전통예술가도 대중성과 현대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서 “수백 년 전 예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현대의 새 패러다임을 넣는 게 진정한 전통계승”이라고 말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에 통하는 전각 만들 것”
고암의 유년시절 기억의 저편에는 생모와 헤어져 살아야했던 가슴 아린 기억도 있지만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영산강과 넓은 뻘밭을 바라보며 풍요로운 자연의 정서를 키울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도 존재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뻘밭”이라고 스스로 고백한 것을 보면, 그의 예술세계에 고향의 정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전각이 ‘도장 파는 일’ 정도로 치부되었던 시절, 부와 안정이 보장되는 직장을 내팽개치고 전각으로의 길로 들어선 것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하나만 잘 하고 싶다’는 결연한 각오 때문이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에서 ‘고암전각예술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기르고 있다. 앞으로 그의 꿈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에 통하는 전각을 만드는 것이다. 문의 : 02-732-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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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련(戀戀) | 6월 17th, 2010 at 10: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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