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10월 24th, 2006 at 11:14pm G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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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일
지은이 조지오웰 George Orwell /김회진 옮김
출판사 범우사 1993년
어렸을때 나는 동물들이 인간 소유의 농장을 접수 한다는 내용 때문에 너무
신나고 재밌게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 책의 진정한 메세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동물농장은 1984년과 흡사하게 광란의 전체
주의에 대한 무지와 맹목적 추종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 경고해주고 있다.
이야기는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이라는 두 영특한 돼지들의 권력 다툼으로
전개된다. 인간을 몰아낸 ‘장원농장’은 ‘동물농장’으로 개명하고 두발로 걷는
인간에 의한 착취와 억압, 학살에서 벗어나 동물만의 세상을 일궈낸다.
이러한 동물만의 세상은 이 농장의 원로인 메이저 영감(돼지)이 부르짖은대로
7계명에 의해 서로 죽이지 않고, 평등하고, 인간을 배척하고 평화롭게 운영
되었지만 그러한 유토피아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능이 똑똑하고 힘있는 돼지종들은 평등의 개념 조차 불평등한 의미로
재정립 했으며, 우매한 다른 동물들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종種’에 유리한
쪽으로 계율을 조정함으로써 돼지들만의 세계를 재창조하기에 이른다.
인간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던 초기의 신념 조차 헌신짝 마냥 내팽겨 치고 ,
결국에는 인간과 음흉한 밀약을 하고 만다. 급기야 돼지들은 인간 처럼 두발로
서서 생활하고, 돼지우리가 아닌 인간의 저택에서 다른 동물들과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특권을 얻게 된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그러나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 할 수 없었다.’
모든 동물 세계가 평등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선도 했던 돼지들이 결국에
스스로의 약속을 날조하여 자신들도 기존의 압제자와 같거나 오히려 더
악랄한 착취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우리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보자면, 386세력으로 대표되는 개혁세력의
집권으로 사회불평등이 해소될거라고 그들의 지지자들은 굳게 믿었지만,
오히려 그 이전 보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말았다.
‘동물농장’마냥 자기 모순에 빠진것이다. ‘동물농장’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두가지
인데, 하나는 언론의 여론조작이고 나머지는 대중들의 무지였다.
스퀄리라는 악랄한 독재의 대변인의 여론조작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는
대두사 무지하고, 멍청한 동물들은 그들의 현란한 언변과 선전, 조작극에
놀아 났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 마저 눈 앞에서 빼앗기고 말았다.
이는 우리 모두가 다시금 이러한 고전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번뜩 되네이게 한다.
이 글은 문학과 예술에 속한 글입니다.
1 Comment Add your own
1. Santiago Ferrell | 11월 13th, 2008 at 12:33 pm
z9twreg09qk9m7pa
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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