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사]장한몽(長恨夢) - 회한과 낭만의 드라마
10월 29th, 2006 at 04:55pm jihwan01
장한몽 - 영원한 한국인의 드라마
지금은 그것이 구식 개그가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하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검은 학생복을 입은 남자가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느냐’하며 부르짖는 장면이 자주 나오곤 했다.
그래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라는 단어는 어린 아이라도 알고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보면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인물
들이 나온다. 아니,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길래 ‘한국을 빛낸 인물’의
반열에 드는가. 도서관에서 위인전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그런 이름들은
안나오기에 초등 학교 시절에 갖은 질문이었다.
물론 이수일과 심순애는 잘 알다시피 극중의 인물들이다.
그것도 근 백년전에 유행했던 극중의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왜 지금까지 희자되고 있는가. .jpg)
많은 사람들이 이수일과 심순애를 한국인이 만든 신파극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연극이 아닌 신문지상의 연재 소설로
등장했으며 그것도 순수한 한국인의 창작물이 아닌 번안소설로서였다.
1897년에서 1899년 사이에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신문 연재 소설인 ‘곤지키 야사(金色夜叉)’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이다.
금색야차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배금주의에 희생당하는
인간성에 대해 고발하는 소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캉이치(貫一)는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집안의 외동딸인 미야마(宮)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성실하고 착한 캉이치의 성격에 호감을 갖고 있던 미야의 부모는 캉이치가
대학을 졸업하는 때를 맞추어 결혼을 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캉이치가
수소문을 한 결과 미야는 거부인 토미야마(富山)의 구애를 받아 그를 따라
떠난 것이었다. 캉이찌는 미야를 찾아 나섰다. 비록 자신이 재력에 있어서는
비견할 바가 아니지만, 그는 자신과 미야 사이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토미야마의 재물에 마음이 혹한 미야는 결국 캉이치를 외면하고 만다.
이 사랑의 실패로 인해, 캉이치는 사람이 변하고 만다. 순수하던 청년이던
캉이치는 괴로움을 잊지 위해 오직 돈을 버는데만 현혹이 된다. 육년 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던 미야는 캉이치를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캉이치는 그녀를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나 완고했던 그의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풀어진다. 미야가 측은하게
생각된 그는 그동안 뜯어보지도 않았던 미야의 편지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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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여기서 중단이 된다. 작가인 오자키 고요가 이 대목을 쓰는 도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에서는 ‘오자키 고요’가 금색야차의 집필에 너무 몰두
하여 수명을 앞당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이 소설은 당대인들의 화제
거리였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상당한 불경기였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오자키
고요의 소설은 35만권이나 예약으로 찍어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오자키 고요는 지금도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문학적으로도 성공한 작가이다.
우리 나라 초창기의 소설 문학도 역시 신문 연재로 시작한다. 주로 처음에는
외국, 특히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을 실었는데 이 시기에 활약한
작가가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 1863~1944) 이다.
그는 1912년에 매일신보에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희곡으로 평가받는 ‘병자
삼인(病者 三人)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극단 ‘문수성’을 창립하는 등 극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역시 매일신보에 1913년 5월 13일부터 11월 1일까지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를 번안하여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였다. 그는 여기서 별도의 작업을 한다.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다수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큰
줄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을 한다. 즉, 일본인인
강이치가 조선인 학생인 ‘이수일’로, 이수일의 애인인 미야가 미모의 조선인
여성인 ‘심순애’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역시 일본이 아닌 조선의 평양으로 설정이 된다. 그리고 또한 큰 줄기가 되는
내용이 아닌 부분은 내용상에서도 손질을 한다. 장한몽에서 유명한 대목인
대동강 변에서 이수일이 심순애의 마음을 확인한 이수일이 보름달을 보며
절규하고, 그런 이수일의 바지가랑이를 붙잡는 심순애의 모습은 사실 원작이
아닌 조중환 자신의 창작물인 것이다.
다른 번안물과 다르게 ‘장한몽’이 한국인에게 친숙한 것도 이런 조중환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작에서는 없는 부분이지만 김중배에게 배신당한 심순애를 이수일이
다시 받아들이는 장면은 한국인들이 원하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흥미있다.
즉, 원작 소설이 물질적 가치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개인들을 그려 내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장한몽은 물질로 상징되는 역경을 딛고 두 사람이
결합한다는 내용에서 전통적인 한국 소설의 구성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결국에는 돈많은 사람으로 상징되는 강자의 방해를 물리친 두사람의 숭고한
사랑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돈많은 이 들이 당시에 전형적으로 생각되는 부도덕한 인물들로 그려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수일이 돈을 얻는 과정은 강이치처럼
자신이 벌어들이는 것이 아닌 고리대금업자의 유산을 받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이수일이 치부과정을 보자면 부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부자들을 경멸하면서도 자신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러한 국민적 관점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내용 들은 금색
야차에서 보이는 인간성과 물질의 공식을 나타내기 보다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결말에서의 결합을 돋보이게 하려는 문학적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수일이 최후에 심순애를 받아들이지만, 과연 이 당시에 이러한 포용력
이 있던 남성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궁금한 일이다. 심순애가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가 결국은 남편인 김중배에게 강제로 순결을 뺏긴 것이라는 점을 살펴
본다면 이광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왜곡된 여성관처럼 이것이 숭고해 보이
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사실과 거리가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결국, 장한몽은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인의
구미에 맞는 어떠한 대립 의식과 그당시는 생소했을 사랑 지상주의를 가미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의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이런 플룻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보더라도 흥미있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이 부에 대한 동경과 꿈같은 사랑을 그리는 한국인의 성정에
맞는 내용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장한몽은 그해에 이미 임성구
(林聖九)에 의해 동명의 연쇄극으로 무대에 올려졌으며 이 후 이를 바탕으로
한 많은 가요와 영화가 나오고 있다.
오늘날 신파극의 대명사가 ‘이수일과 심순애’ 이 듯이 이 들은 한국인이 가슴
속에 오래 전 부터 유전된 낭만적인 자아이기도 하다.
이 글은 문학과 예술에 속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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