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04날] 바라나시 역 - 테러에 희생되는 사람이 없길 세상보기 28 - 무가지 신문과 힘겨운 ‘인생수레’

대학 경쟁력 없다 - 교수님의 항변

11월 24th, 2006 at 04:54pm confidant

어제 그저께에 걸쳐 우리나라 대학은 경쟁력이 없다는 소리마당 토론 글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대학들의 낙후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은 사실이고, 여기에는 대학을 구성하는 사회, 학생 그리고 교수집단 모두
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교수집단의 말석을 차지한 자로써
교수의 입장에서 변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아래의 글은 모든 교수들의
통일된 입장이 아님을 염두에 두셔야할 것입니다. 


대학교수의 기본 임무는 연구와 교육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부실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왜 우리나라 교수들은 연구를 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은 틀린 질문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학위와 post doc을
마치고, 교수로써 부임할 때 이제 연구는 끝! 지금부터 놀자!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분은 한 분도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아직까지는 미국박사
출신이 주류인 이공계 교수들은 미국에서 한 게 있으니까 부임초기에는
열심히 하시려고 하지요. 그들이 제일 먼저 부딪치는 벽이 강의와 행정업무
입니다.

저의 예를 들면 저는 부임초기에 주당 20시간까지 강의를 해봤습니다.
다음 학기의 강의시간은 12시간입니다. 이 중에서도 대학원 강의 3시간은
특히 괴롭습니다. 교수가 부족해서 전공교수는 없는데다가, 대학원 강의니까
해당분야의 최신논문들에 대하여 review article 쓰듯이 공부해야합니다.
그러다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다른 업무에 밀려 대학원 강의는 매번 좌절
하지요. 정말이지 대학원은 저의 세부전공인 생물리화학 강의만 했으면 좋겠
습니다. 학부강의도 시간을 잡아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우 주력과목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험을 치는데, 채점만 해도 하루가 갑니다. 시험도 강의
시간을 잡아먹으면 안되니까 저녁이나 토요일에 3시간 정도 칩니다.

사립대의 경우 학생대 교수의 비율이 50~60 대 일입니다. 이것만 보셔도 우리
나라 교수들의 강의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행정도 마찬
가지입니다. 저는 학과장으로써 학과강의시간표 짜기, 장학생사정, 학과 재물
파악, 건물관리 등등 지금도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교수들도 행정 일에
쫒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연구환경은 어떻습니까? 저는 연구실에 어림잡아 7~8억에 가까운 연구장비
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전에 얼핏 말씀드렸듯이, 이 중에는 저의 집을 저당
잡히고 마련한 것도 있습니다. 집을 잡힐 만한 배짱이 없는 교수들은 여기
서도 좌절합니다. 저처럼 고가의 실험기기가 아니라 단 몇백 혹은 몇천만원의
실험실 설비와 첫시약을 마련할 예산이 없어서요.

연구비 몇 억, 몇 십억하는 연구실들은 주류 학계에서 그나마 드문 예지요.
저 같은 지방대학 출신의 지방대학 교수, 그리고 부임 초기의 교수들로써는
그야말로 꿈일 뿐입니다.

교수들은 이처럼 강의에, 행정에, 연구비에 시달리면 많은 경우 처음의 꿈을
잃어버리고 기존의 이미 포기해버린 교수들과 어울리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편한지를 느끼면 그렇게 끝나게 됩니다.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두 가지를 바랍니다. 그 하나는 우리 교수들에게도 선진국
수준의 연구환경을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교수들은 아니겠지만,
돈(연구비)들여 그런 환경을 보장해주고, 그래도 선진국의 연구/교육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는 교수들에게 한해서는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선진국 수준의 기회를 단 한 번만이라도 주고, 그래도
못하면 비난을 하든, 책임을 지우든 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비슷한 얘기
지만, 교수의 권위를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연과학계열 교수의 권위는
연구업적에서 정립됩니다. 본인이 소속된 기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권위가
아닌, 연구업적을 철저히 양적/질적으로 분석해서 인정하는 교수개인에 대한
진정한 권위 말입니다. 진정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교수들은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워야겠지요.

위의 글은 전적으로 저 개인의 생각입니다. 자세하고 합리적인 검토 끝에 나온
얘기가 아니어서 많은 생각이 감정적으로 흐른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이런 점도 있구나하는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일과사랑에 속한 글입니다.

1 Comment Add your own

  • 1. trendon  |  11월 24th, 2006 at 6:11 pm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방향과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엇나가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모 대학교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한번 적어봅니다. 기업이라는 동네는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걸 대학에 알려주지 않는다. 그걸 알려주면 대학들이 준비를 할텐데….

    기업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개하는 순간, 어찌 될까요? 어라 이거 돈이 되는군. 혹은 저 기업이 저걸 하려는 구나. 난 이걸로 해서 뒤통수 쳐야 겠다. 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기업들이 대학에 필요로 하는 기술을 알려주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냥 이런 문제 나오면 웃고 넘어갑시다. 대학과 대학원이 학위 장사해서 돈 벌고 기업은 그거 책임져주고…. 하루이틀 문제도 아니고… 진짜 능력 있는 사람들은 교수 자리 줘도 안갖습니다. 교수라는 자리도 안정적인 자리라는 점을 알아야 할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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