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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두만강 - 북녘 인민의 한많은 넋두리

12월 5th, 2006 at 10:26am jihwan01

김정구(金貞九)- 

 오늘날의 젊은 이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대를
하나만 더 올라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다.

 남인수(南仁樹), 고복수(高福壽) 등과 함께 한국의 제 1세대 가수인 그는
오늘날 60대 이상의 사람들이 늘상 흥얼거리는 노래의 주인공이다.

앞니를 거멓게 칠한 채로, 당시로서는 연미복 차림에 조금의 자세 변화도
없이 성악가처럼 꼿꼿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정석이었던 무대에서 그는
분위기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며 익살스러운 표정도 흉내내는 그런 신식
가수였다. 일제 시대의 주요 도시이던 원산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문명의
혜택을 본 그는 당시 가장 인기를 구사하던 오케 레코드 사의 전속 가수였다.

그가 자주 부른 곡은 만요(漫謠)라 하는 일종의 세태를 풍자하는 코믹한 노래
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곡이 왕서방 연서, 바다의 교향시 같은 오늘날에도
인기를 얻고 있는 곡들이다.

 만요 가수로 성공한 김정구이지만 사실 그의 사연이 담겨있고, 진정으로
민중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은 노래들은 그런 희화적인 노래가 아니다.
오늘날 트로트의 대명사로 알려진 ‘눈물젖은 두만강’과 지금은 생소하지만 
일제 말 금지곡 처분을 받은 ‘낙화삼천’이라는 노래이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단순한 연가 같은 이 노래가 인기를 얻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잦은 자연
재해와 만성적인 가난, 수탈 본위의 경제 정책 때문에 전통 사회에서 설 자리
를 잃은 사람들은 정든 땅을 떠나는 수 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도시로 흘러들
었으나 대학 졸업자조차 직업이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조선의 현실
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밤늦게 술취한 기생들의 인력거를
끄는 일 이상이 아니었다.

또한 한 달 분의 쌀에 어린 딸들은 유곽가의 붉은 등불 아래에서 마른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살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만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봉천으로 가는 열차에는 피난민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주 허가권
을 목숨처럼 부여잡고 빼곡히 삼등칸을 메웠으며 이마저도 허여치 않는
이들은 밤마다 몰래 두만강을 넘곤 했다.


낙화삼천은 1942년 발표된 총독부 지원 영화 ‘그대와 나’(키미토보쿠)에서
뱃사공으로 분한 김정구가 극중에서 부른 노래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당시
‘내선일체’의 국시에 맞게 부여출신의 남자가 일본 처녀와 결혼해서 고향인
부여의 신사에 참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문제는 일본 공연 중에 발생했다.

당시 일본에 있던 영친왕의 위문 공연을 할 당시 인기곡이던 낙화삼천도
그 자리에서 부르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던 중 김정구는 뜻하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망한 나라의 왕자 앞에서 천년 전에 이미 사라진 왕조의
영화를 회상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새삼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진
까닭이었다.

이 사건 때문에 이 노래는 조선인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여겨져 금지곡
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 노래들은 일제 시대 때 사랑을 받았으며, 역사의 풍란 앞에 시달린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마음을 달래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이 전의 세대들이 사라지면서 이 노래들도 박물관의 유물처럼 생생한
의미는 잊혀진채 녹슨 왕관처럼 낡은 취향의 멜로디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노래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일제 시대나 지금이나 삶에 지친 이들은 두만강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넘고
있다. 여러분들이 갖은 조미료로 양념을 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가하게
여자 이야기를 하고, 인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도 낙화암에 떨어지는
젊은 넋처럼 쓰린 눈물에 핏발이 선 이들이 아귀처럼 한이 서린 강가를 배회
하고 있다.

전쟁에 희생된 가녀린 여인들이 회맹장의 백마처럼 죽어간 것이 백마강의
기슭이라면 두만강 저 편으로는 오래된 폭정으로 인한 죽음을 피하려 불씨
처럼 미약한 목숨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강가를 건너고 있다.

 언제쯤이야, 두만강이 한 많은 넋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저 땅의 인민들이 언젠가는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을 소망한다.

이 글은 국제관계/세계인에 속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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