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인사의 부고
9월 8th, 2007 at 10:07pm coffeem
어느 유명인사의 부고
지난 25일 중앙일간지에 유명 인사의 부고가 일제히 게재되었다. 당사자는 김준성 전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이수그룹 명예회장이었다. 부고내용은 “ 고 김준성 전 부총리 이수그룹 명예회장의 사회장을 다음과 같이 거행하게 됨을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것이었다.
눈에 띄는 대목이 사회장이라는 문구였다. 사회장이란 ‘각계각층의 사회단체의 중진들이 모여 부서를 정하고 위원을 선출하여 장의위원회를 구성하고 계획을 세워 장례를 집행하는 일’을 말한다. 사회장은 장례경비가 국가에서 보조한다. 의문이 가는 것은 과연 그 분이 각계각층의 사회단체의 중진들이 모여서 장의를 논의 할 정도로 사회에 기여했는지 다.
25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그의 인물평을 보면 “67년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설립되면서 초대 행장을 맡았다. 이후 제일은행장, 외환은행장, 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계 수장을 두루 역임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82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1대)에 올랐다.
87년 삼성전자 회장, ㈜대우 회장을 지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돈으로 95년 대우와 상호 채무지급보증으로 얽혀 있던 이수화학을 맡아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켰다. 이수화학은 이듬해 대우에서 완전 독립해 화학 건설 등 13개 계열사를 가진 그룹으로 성장했다.
2000년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아들 김상범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으며 최근까지 전경련 고문 겸 원로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했다.”라고 적혀 있다.
말년에 그가 행한 이수그룹의 경영능력을 ‘ 95년 대우와 상호 채무지급보증으로 얽혀 있던 이수화학을 맡아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켰다. 이수화학은 이듬해 대우에서 완전 독립해 화학 건설 등 13개 계열사를 가진 그룹으로 성장했다. ’라고 평하고 있다.
채무지급보증으로 얽혀 있던 이수화학을 이듬해 독립했다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대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독립이 가능했을 까. 역대 부총리 중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분은 없다. 보통 역임한 기관의 장으로 장례를 집행한다. 그의 인생 대부분은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보냈지 국가 발전을 위한 공인으로서 활동한 기간은 그리 많지 안했다.
우리사회에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러야 할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별세하면서 가족장을 고집했고 가족들은 유지를 받들어 조용히 장례를 집행하였다.
고 김준성 씨의 장례는 가족장이나 회사장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부총리만을 역임했다 해서 사회장으로 하는 것은 그의 인생 역정과 비교해 볼 때 도리가 아니었다. 더욱 더 모순이 가는 것은 국가의 보조를 받는 장례를 서울대 병원이 아닌 사기업이 운영하는 아산병원에서 했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분이나 가족들이 참 생각이 짧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대부분을 돈 버는 데 보내 신 분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명예와 부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것을 볼 때 지도자들의 행태가 선진국 형으로 변하라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
http://blog.joins.com/dugsum/8446159
이 글은 사회/교육에 속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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